HOME > 원자력 홍보관 > 원자력이 있는 풍경
글 : 박미경 자유기고가 / 사진 : 이진우 사진가 [2003년 09월 통권 22호]
푸른 바다에 희망이 부푼다
울진(蔚珍)이라는 지명은 '산림이 울창하고 진귀한 물산이 풍부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강송 군락지로 유명한 소광면 강송림 지역이나 휴양림이 있는 통고산 일대 숲이 산림의 울창함으로 그 이름을 확인시킨다면, 기성면 일대의 자연산 돌김, 나곡리 바닷가의 미역을 포함해서 갖가지 어류와 전복, 해삼 등의 해산물은 물산이 풍부하다는 이름값에 답한다.

그런데 그 이름의 대표성에 한 가지 결여된 것이 있다. 바로 울진의 해변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청정하천으로 꼽히는 왕피천과 불영계곡, 광천계곡을 흘러나온 물들이 동해와 합수되는 울진의 해변은 물의 맑음도 맑음이려니와 7번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해안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여름이 되면 그 '풍경'은, 10여 개에 달하는 해수욕장으로 변해 사람들을 안아들이는데. '나곡' '망양' '후정' 해수욕장 등 해서, 그동안 밀쳐두었던 이름표를 다시 곧추 세워 달고 여름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울진의 해변을 찾아가 본다.

천혜의 자연환경...해수욕장 10여개 달해


해안선에 모래사장을 펼쳐 둔 울진 바다는 대개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다른 계절 동안에는 산포리 앞바다였던 것이 여름 한철 동안에는 '망양해수욕장'으로, 죽변 앞바다였던 것이 '후정해수욕장'으로 변한다. 나곡, 후정, 봉평, 망양, 덕신, 기성망양, 구산, 후포 등 8개의 공용 해수욕장과 그 규모가 작거나 새로 인가되어 잘 알려지지 않은 고포, 양정, 진복해수욕장 등이 그들이다. 이렇게 바다가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릴 즈음이면 인근 바닷가 마을의 주변 풍경도 따라서 변한다. 먼저 겨울 해풍에 비뚜름해진 '민박' 간판들이 바로 걸리고 희미해진 글자들도 색을 덧입어 선명해진다. 가게의 진열장에는 새로 들여온 물건들이 빛을 발하고, 불꽃놀이용 제품상자들이 눈에 띄게 는다. 바다가 8월을 맞기 전에, 서둘러 8월의 바다를 준비하는 것이다.
"저희 고포해수욕장은 작년에 개장을 했어요. 아직 사람들을 본격적으로 받은 적이 없는 처녀지다보니 물고기들이 많아서 피서객들보다 먼저 낚시꾼들이 많이 찾아든답니다."
고포 앞바다의 개장과 함께 해변으로부터 도로 하나 건너에 <고포식당>을 낸 방희자(54세) 씨. 백사장이 아담하게 펼쳐진 고포 앞바다가 이제 갓 해수욕장으로 변모해 피서객을 맞을 채비를 하듯이, 그네도 새로 시작한 장사의 성수기를 맞을 채비로 바쁘다.
지난 6월 28일 서해안의 대천해수욕장을 시작으로 전국의 해수욕장들이 개장되기 시작했으나, 7월 중순의 해수욕장은 아직 그 전형성과는 거리가 멀다. 해수욕객은 보기 힘들고, 그저 바닷가를 거닐거나 낚시나 작살을 이용해 고기를 잡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낚싯대를 벌여둔 이들 가운데 초록색 바탕에 밀감빛 태양과 키 큰 야자수가 프린트 된 일명 '하와이 셔츠' 입성이 몹시 눈에 띄는 김위동 씨(52세). 바다에 나온 지 반나절 가량 되었다는 그이는 벌써 복어며 광어, 놀래미를 제법 낚았다.
"꼭 잡아야 맛인가요. 많이 잡는 것은 어부가 할 일이고, 저희 같은 사람이야 하루 기분 좋게 쉼하는 거지요.그런데도 '어복'이 있는 모양인지, 낚싯대가 인사를 잘해요."
올해로 낚시 경력 12년째라는 그이는, 태백에 있는 장성광업소의 광부다. 휴일이면 어김없이 바다를 찾게 된다는데, 반드시 고기를 낚으려는 목적만은 아니다. 끝간데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낚싯줄을 치는 일이 지하 5,500미터까지 내려가는 온도 36도 작업장 안에서의 노동의 시간들을 위로하기 때문이다.
" 일단 눈이 시원하게 트이는 게 바다 낚시의 매력이잖아요.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여름 중에서도 이맘때의 해변이 바다 낚시를 즐기기에 가장 알맞지요."
그이가 말을 하는 동안에도 어김없이 낚싯대가 '인사'를 하고는, 배 부위가 노란 참복 두 마리가 나란히 잡혀 올라온다.

여름바다를 즐기는 사람들


‘89년에 개장한 나곡해수욕장은 은빛 모래사장이 제법 너르게 펼쳐진 곳이다. 마을 앞바다가 피서객들의 소유가 되기 이전에 좀더 먼저 그곳에서 여름바다를 만끽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동네 노인들은 찌글텅한 파라솔이나마 빌어다 세워놓고 그 아래 삼삼오오 둘러앉아 정담을 나눈다. 또 부구에서 엄마아빠를 따라 온 재중이와 건우, 건우 친구 동준이는 피서 인파에 해수온도가 올라가기 전에 바다에 몸을 담근다. 보는 이 많지 않은 '동네 해변'에서는 벌거숭이 알몸도 부끄러움이 아니다. 이처럼 갓 개장한 한적한 해수욕장들은, 오롯이 인근 주민들의 차지가 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겐 몸과 마음을 푸는 휴가지인 이곳이 어떤 이들에겐 바싹 긴장을 한 채 지내야 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나곡해수욕장 여름파출소 최주호(23세) 씨. 315전경대 소속인 그이는 7월 12일부터 8월 20일까지 문을 여는 여름파출소에 지원근무중이다. 부표 밖으로 사람들이 못나가게 하고, 야간에 술을 마시고 바다에 들어가거나 해수욕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들을 단속하는 것이 그이의 주된 업무다. '윤이네 민박' '일환네 백숙'…. 입구에 하나네처럼 아이들 이름을 업소명으로 한 정겨운 간판들이 세워져 있는 후정해수욕장. 펄펄 살아서 뛰는 싱싱한 횟감을 맛볼 수 있는 죽변항과 울진원자력발전소 전시관, 약알칼리성 온천으로 유명한 덕구온천 등 울진의 명소들과 인접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또 푸른 소나무숲과 바다 사이에 흰 띠를 두른 듯 펼쳐진 모래사장의 너비와 길이도 상당해서, 여름 동안에만 임시로 생기는 '점포'들이 멀리 해수욕장 밖으로 물러나 있는 게 아니라 해변 백사장 위에 설치가 된다. 마을 주민들에게 상가 설치의 일차적 권리가 주어지는데, 죽변5리에 사는 최철규(24세), 임만길(22세) 씨는 이름 대신 번호가 매겨진 이들 점포 가운데 '3번 횟집' 주인이다. "직장에 다니는 중인데, 부업 삼아 후배랑 동업으로 시작을 했어요.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열심히 모으려고요."

바다에 기대어 희망을 꿈꾼다

철규 씨가 후배 만길 씨와 함께 철골 골조 위에 차양을 치며 한 말이다. 바다에서는 밑바닥을 고르게 하느라 선박들이 모래를 옮기는 동안, 모래사장에서는 여름경찰서 전망대에 스피커가 달리고 차양이 쳐지며, 임시 점포의 골조들이 세워진다. 해변이 도로와 경계 없이 맞붙어 있어서 여름에는 한 길에서 비키니 수영복과 양복 차림의 사람이 함께 걷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는 봉평해수욕장, 왕피천을 내려온 맑고 깨끗한 계곡물을 파도의 흰 포말이 다가와서 손잡아 내려가는 합수천과 관동팔경의 제일경으로 꼽히는 망양정이 바로 옆에 자리한 망양해수욕장,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진 후포등대가 바라다 보이는 후포해수욕장 역시 매양 한가지의 풍경이다. 뭍과 닿는 지점에 콩알만한 갯돌과 고운 모래가 뒤섞인 백사장을 펼쳐 놓고, 푸르고 서늘한 제 자락 안에 사람들을 품어 안는 울진의 해수욕장들. 해변의 밀도와 해수면의 높이가 올라가면서 바다가 부풀기 전에, 그 여름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희망이 먼저 부풀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45-13 코오롱 포레스텔 1408호 | ☎ (02) 784-4060
Copyrightⓒ 2016 WII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