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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미경 자유기고가 / 사진 : 이진우 사진가 [2003년 07월 통권 20호]
만경창파에 노니는 재물 멸치잡이의 기쁨
멸치 중에서도 ‘봄멸치’로 유명한 대변항의 4∼5월은, 바다에서 선상 가득 멸치를 싣고 돌아오는 유자망 어선들의 엔진소리와 만선을 알리는 듯 유난한 깃발들의 펄럭임, 선원들이 잡아 온 멸치를 털어 내면서 부르는 후리질 소리,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물 위에서 은빛으로 번쩍이며 튀어 오르는 멸치들의 퍼덕임이 가세해 온 포구가 벅신벅신거린다.
“대변항은 전국 유자망 멸치 어획고의 60%를 차지하는 동해안에서 가장 큰 멸치어장입니다. 그 중에서도 봄에 잡히는 ‘봄멸치’가 특히 유명해요. 남해에서부터 바닷길을 거슬러온 산란기의 왕멸치들이 3월 중순부터 5월 중순경 기장 앞바다를 지나니까, 이 무렵에는 날만 좋으면 하루 두 번씩 조업을 합니다.”

우리나라 제1의 멸치어장 대변항



새벽 조업을 마치고, 오후 출항준비를 하고 있는 근해유자망 22톤급 ‘용성호’의 선장 박윤봉 씨. 대변항 봄 멸치잡이 현장을 보기 위해 부산동부수협 대변지소의 주선으로 박 선장의 배에 승선키로 했는데, 이이는 오십여 년 생애의 반 이상을 바다에서 났다고 한다.
“글쎄 이게 타고난 팔잔지…. 컴컴한 밤바다에서 조업하면서 파도에 시달리고 멀미에 시달리면, ‘내 뭍에만 돌아가면 다시는 배 안 탄다’하고 앙다짐을 해요. 그래도 다음날이면 다시 배를 타요. 모질게 외면하고 직장을 들어가도, 3개월을 못 있어요. 바다가 생각나서…”
천상 ‘바다 사람’인 박 선장의 이야기 끝을 용성호의 힘찬 엔진음이 지워버린다. 배가 바다로 나선 것이다. 포구 주변에는 없던 바람이 일시에 몰려와 귓전을 가르자 먹먹한 귓속으로 ‘멸치잡이노래’ 가락이 들려오는 듯하다.

에헤야∼ 술배야∼ 퍼실어라 퍼실어라 / (…) / 만경창파에 흐르는 재물 건진 자가 임자로세 / 우리배 임자 재수 좋아 간 데마다 만선일세 / (…) / 노력으로 잡아다가 귀히 부모 처자식 극진 공대하여 보세 / (…) 우리고장에 들어온 멸치 우리배 망자로 다 들어온다.

한 시간 이상을 센 물살을 지치며 나아가던 배가 속도를 늦춘다. 노래 가사 그대로 ‘만경창파에 흐르는 재물’인 멸치떼가 어군탐지기에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박 선장이 신호를 보내자, 선실에 있던 예닐곱 명의 선원들이 고무장화와 우비 형태의 작업복들을 꿰어 입고 바삐 움직인다. 배 가장자리에서 부표를 던지는 사람, 안쪽에서 부표의 끈을 풀어 전달하는 사람, 후미에서 그물을 푸는 사람, 배 앞머리에서 그물을 바다로 내리는 사람…. 노랑, 파랑, 보라색 저마다 다른 작업복 색깔에 배의 출렁임까지 가세해 몹시 어수선해 보여도, 각자가 있어야 할 위치와 그 위치에서 해야 할 업무가 잘 구획되어 있음을 이내 알 수 있다.



삶을 노래하는 멸치 '후라칠소리' 어여차

“한 15년 전부터 멸치 어획량이 많이 줄었어요. 그래서 당시에는 배도 50척 정도 됐었는데, 이제는 우리 배를 포함해서 14척이 다입니다.” 흰 부표들이 말줄임표처럼 점점이 바다 위에 떠있는 동안은 선원들도 말이 주는데, 어획량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긴장 탓인 듯 하다. 다만 나이로나 경험으로나 선원들보다 갑절은 오래인 박 선장만이 이야기를 잇지만, 그 역시 시선은 곧 그물을 들어올릴 선두 주변의 도르래에 꽂혀 있다.
이윽고 그물이 들어올려진다. 조금 전까지 물결의 일부로 흔들렸거나 햇살 조각처럼 수표면을 반짝이게 하던 멸치들이 그물에 꿰인 채 줄줄이 딸려 올라온다. 딸려 올라오면서도 여전히 흔들리고 반짝이면서.
“허 그놈들 참, 굵네.”

맨 앞에 서있는 선원이 마치 승전나팔을 불 듯 목청을 돋우자, 나머지 선원들의 얼굴이 일시에 환해지면서 그제야 탄성과도 같은 말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진다. 그 탄성들이 그물을 끌어올리는 팔뚝에 울끈불끈 힘을 솟게 하는 추임새로 작용하고, 올 정월에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와

함께 뱃머리에 새워둔 대나무 기촉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배는 ‘우리고장에 들어온 멸치 우리배 망자로 다 들어온다’ 할 정도로 이내 그득해진다.
바다에 정박한 배와 포구 사이에 그물을 깔아 연결하고 한 사람이 뱃전에서 멸치를 잡은 그물을 건네주면, 포구에 먼저 내려 선 선원들이 그물을 털어 멸치들을 밑에 깔린 그물로 모두는 것. 이렇게 멸치를 털어내는 것을 이곳 말로는 ‘멸치 후린다’라고 한다. 짧게는 40m에서 길게는 90m에 달하는 길이의 그물 틈새에 꽂히듯 걸린 멸치들을 털어내는 이 과정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선원들은 바다에 나가 멸치 잡는 일보다 포구에서 멸치를 후리는 게 더 힘들다고 할 정도다.
“어여차아차 / 어여차, 재이나 차이야 / 재이나 차아.”
그래서 생겨난 것이 ‘후리질 소리’일 것이다. 일렬로 나란히 그물을 잡고 선 선원 가운데 한 명이 그물을 털 때마다 이 소리를 선창하면 나머지 선원들이 후렴을 넣듯 따라서 한다.
소리는 달라도 작업 방식은 매양 한가지로, 마치 키에 곡식을 까부를 때처럼 서너 번은 약한 반동으로 그물로부터 멸치를 떼어내기만 한다. 그럴 때는 후리질 소리도 저음에 가깝다. 이윽고 후리질 소리에 강세가 찍히면서 된소리로 변하면 선원들의 어깨 움직임이 커지고 팔동작이 거세어지면서 그물이 큰 폭으로 요동을 친다. 그러면 그물로부터 분리된 멸치들이 일제히 튀어 오르며 공중에서 찰나와도 같은 은빛을 한번 내뿜고는 배와 포구 사이에 걸쳐둔 밑 그물로 떨어진다.
십수 척의 배들이 포구에 정박한 채 만들어내는 후리질 장면은 그 자체로 큰 볼거리여서 일부러 구경 삼아 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또 후리는 도중 포구 주변으로 튕겨 나가는 멸치들은 누구나 주워가도록 모르는 척 하므로, 바다에서 막 건져 온 이 싱싱한 멸치들을 줍기 위해 찾아드는 사람들도 많다.

잡는 것보다 더 힘든 노동, 후리질

오늘 하루의 조업을 마치고 귀가를 준비하는 선원들, 포구 바닥에 흩뿌려진 멸치 줍기에 여념이 없는 주민들, 그물에 모둔 멸치를 바삐 옮겨서는 곧바로 염장을 하는 상인들, 한 발짝쯤 떨어져서 그 모든 광경들을 바라보고 서 있는 나들이객들 해서, 날은 저물어가는데 포구의 부산함은 사그러들 줄을 모른다. 잡아도 잡아도 ‘멸하지 않는다’ 해서 ‘멸치’라는 이름을 얻었다던가. 이 멸치가 이름 값을 하는 동안에는 기장 앞바다의 멸치잡이 풍경도 대변항의 벅신벅신한 포구 풍경도 사라지지 않을 터이고, 기장 봄멸치의 양명함도 변함 없이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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