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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미경 자유기고가 / 사진 : 이진우 사진가 [2003년 05월 통권 18호]
명주실로 옛 정통의 맥을 이어간다.
차부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노인들의 몸에는 두터운 스웨터가 여전하지만, 그래도 지금 경주 땅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보문단지를 지나 감포로 외돌아 가는 국도 가에 펼쳐진 나무들은 작은 몽우리들을 티눈처럼 달고 있거나 가지 끝이 붉게 농익어 있다. 논에는 순한 보리 잎이 푸르디푸르고, 논두렁과 밭둑에는 봄나물들의 생명력이 가득하다. 봄은 이렇게 다시 찾아들고 자연은 반복되지만, 한번 사라지고 나면 좀체 볼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 옛 살림살이, 옛 풍물들.
그런데 월성원전 인근마을인 경주시 양북면에는 아직도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잦고 꾸리를 만들어 베틀에 짜는 등, 옛날 방식 그대로 명주베를 짜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손주' 명주베마을. 양북면 두산리 '두산명주마을'을 찾아가 본다.

한올 한올의 명주실이 만들어내는 활기찬 마을


한두 집 건너 하나씩 을씨년스레 속내를 드러낸 폐가들이 있게 마련인 농촌마을들과 달리, 흙돌담을 따라 외돌아 가는 골목들마다 푸짐한 햇살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활력이 느껴지는데, 마을 끄트머리에 자리한 이찬우 옹(73세) 댁 안마당에 이르러서야 그 활기의 연유를 알게 된다. 앉은 모양새는 마당 한켠 맷돌처럼 고집스레 오래 돼 보여도, 손놀림은 재기 많은 아낙네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공동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명주실에 힘이 들어가도록 가닥 가닥마다 풀을 먹이는 중으로, 그네들 말로는 '베를 맨다'라고 표현한다.
"그동안은 추워서 못했는데, 날 풀리니까 이집 저집 돌아가며 시작을 했지요. 베를 맬려면 너른 마당에 펼쳐두어야 하니께."
베 매고 짜는 일이야 예로부터 아낙들 일이라는 듯 먼발치에 앉아있다가는, 일손이 필요하다 싶으면 슬그머니 다가가 꼬인 명주실 몇 올을 풀고 이내 다시 돌아와 앉는 이찬우 할아버지. 바쁜 아낙들을 대신해 그이가 먼저 말문을 연다.
쟁기 모양으로 생긴 들말의 한쪽 기둥에 단단히 묶인 베는 거대한 실패 즉 도투마리에 말린 채, 다른 한쪽 들말에 팽팽하게 잇닿아 있다. 풀기를 말리기 위해 뭉근한 화로가 놓여있는 베판 위를 풀빗자루가 춤을 추고 지나면, '바디'라고 불리는 참빗 모양의 촘촘한 가름대가 명주실 올올을 머리를 빗듯 가지런히 가다듬는다. 바디가 다가올수록 뒤켠에서는 꼬이거나 엉킨 명주실을 푸는 손놀림이 부산해진다. 하나같이 두텁고 옹이진 손들. 명주실의 빛깔이 투명하고 고울수록, 트고 갈라지고 거스러미 일어난 손이 보는 이의 마음을 겹게 한다.
지금처럼 베를 매기 위해서는 먼저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내려 감는 작업과 일일이 실패에 감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실을 뽑는 것을 '베를 내린다'하고 분유통 같은 깡통에 감는 것을 '베를 난다' 한다. 이렇게 '내리고', '나고', '매고' 난 뒤에야 베를 '짤 수' 있다.

명주실을 직접 뽑아 명주베를 짜는 국내 유일한 곳



지금이야 천지에 우리 마을 한 군데지만, 예전에는 참 흔하디 흔한 풍경이었제. 할머니가 베짜는 거, 어머니가 베짜는 거 다 보고 자라다가, 처녀소리 들으면서부터는 나도 짜기 시작해 시집 와서 또 짜고….
나이 열아홉에 동네 하나 건너 두산리 마을로 시집을 온 김영자 할머니(73세)의 말이다. 아직도 집에서 그네의 발놀림, 손놀림에 쿵터덕 쿵, 척 쿵터덕 쿵, 척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베틀은 시어머니의 시할머니 때부터 쓰던 것으로, 4대에 걸쳐 내리 물림 되어온 것이다. 김영자 할머니가 시집 올 때 붉은 명주치마를 입고 왔듯이 명주옷감은 멀게는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가깝게는 일반가정에서 혼례와 같은 경사 때 자주 쓰이던 옷감이었다. 그러던 것이 한복문화가 사라지고 또 기계식 대량생산법이 개발되면서 그네들이 기계주라고 부르는 베에 밀려나 손으로 직접 짠 명주베 즉 손주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우리 국토 어디에도 손으로 명주실을 직접 뽑아서 잦고 꾸리를 만들어 명주베를 짜는 마을은 이곳 양지마을을 빼고는 없는 것이다. 두산리 양지마을 30가구 중 18집이, 공동작업이 필요한 단계에서는 돌아가면서 품앗이를 해가며 명주베를 생산해 낸다. 할배, 할배 적부터 오백 년은 족히 짰을 것이라는 말로 김영자 할머니의 말을 거들던 이춘희(65세) 할아버지가, 두산리가 국내 유일의 명주마을이 된 사정을 들려준다.

우리 마을에서도 한동안 맥이 끊겼었다가, 시에서 장려를 하니까 한 집 두 집 다시 베를 짜기 시작했지. 농사짓고 나면 남는 시간에 노인들이 뭐 할 일이 있나. 이래 모여 가지고 같이 일하믄 심심지 않고 돈도 되니 좋지. 그래도 다른 마을들에서는 힘들다고 안 한다는데, 용케도 우리 마을에서는 뜻이 모아졌어요.

그렇게 짠 베는 잿물에 삶아서 사나흘을 물에 담갔다가 말리고, 다시 담갔다 말리기를 반복한 후에 풀을 먹여 다듬이질을 한다. 두 필을 짜는 데 걸리는 시간이 꼬박 보름이 소요되니, 그 공들임과 손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렇게 힘은 들지만, 마을 전체가 연간 200필 정도를 짜서 약 7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니 농가부업으로는 꽤 큰 소득인 셈이다.

만들어진 명주베는 대부분 망자들을 위한 수의(壽衣)용으로 쓰이는데, 생산량이 적은 만큼 소비량도 적은 편이다. 수의를 미리 준비하면 수명이 길어진다고 하여, 어느 나이에 이르면 노인들 스스로 혹은 가족들이 수의를 준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다만 가까운 옛날만 해도 좀 있는 집에서는 명주수의를,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삼베수의를 사용해 왔지만 지금은 내남없이 기계식으로 짠 삼베수의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유려한 광택에서부터 풍성한 촉감, 흙에서 잘 썩어 환경친화적이라는 점 등 해서 천연 비단으로 만든 수의의 장점만은 변함 없이 인정받고 있다. 게다가 명주수의에는 누에고치 속에서 잠을 자고 난 누에 번데기가 나비가 되어 새로운 삶을 준비하듯이, 누에고치의 실로 짠 수의를 입고 죽음이라는 긴 잠을 잔 뒤에 새로이 환생하기를 바라는 염원까지 담겨있다.
명주베 한 필의 가격은 대략 50만 원 정도로, 수의를 짓는 데 드는 양이 여자는 3필, 남자는 4필 가량이 된다. 거기에다 바느질 수공을 합하면 보통의 농촌 아낙들이 꿈도 꾸지 못할 옷값이지만, 명주베를 직접 짜는 덕분에 이곳 주민들은 내남없이 그 값비싼 명주수의를 하나씩 다 마련해두고 있다.

정성과 염원이 담긴 천연비단의 명주수의

현재 이 마을에서 명주베를 짜는 아낙들 중에는 56세가 제일 젊고 그 아래로는 더 이상 배우겠다 나서는 이가 없으니, 이 손주 명주베의 전통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때문에 오늘 이찬우 할아버지네 마당에서 노인들이 잇고 있는 것은 단순히 명주실이 아니라, 명주베의 전통과 품앗이의 미덕인지도 모른다. 베를 매며 품앗이하는 노인들의 정담소리와 베틀소리가 야트막한 흙담을 넘나드는 두산리 양지마을을 돌아 나오며, 고치속에서 잠을 자고 난 누에 번데기가 나비가 되어 새로운 삶을 준비하듯이, 이곳 <두산명주>의 전통이 이어지고 이어져 언젠가는 보다 화려하게 부활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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