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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미경 자유기고가 / 사진 : 이진우 사진가 [2003년 03월 통권 16호]
"이 바다가 우리 받이랑께"

호남지방의 '순천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영남지방에는 '동래나 부산에서 기장의 처녀를 따라잡을 처녀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기장 처녀들의 용모가 빼어나다는 표현인데, 이말 끝에는 반드시 더 따라붙는 말이 있다. '그러한 기장 처녀보다 기장미역이 더 낫다'는 말이 그것이다.

미역 생장에 최적의 자연환경

' 기장'이라는 지명을 전국에 널리 알리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미역'일 것이다. 그만큼 '기장미역' 하면 미역 중에 최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는 기장 앞 바다의 돌미역이 궁중의 진상품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세종실록지리지 당시나, 자연산보다는 양식이 주종을 이루는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미역 성장의 적정온도는 수온이 10~13℃이고 12월~2월 사이에 가장 잘 자라며, 강한 계절풍의 영향으로 조류의 상하유동이 좋아야 질이 좋아지며 병충해의 피해도 적다. 기장은 바로 이 수온 및 자연환경이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 따라서 타 지역 미역보다 씹는 맛이 쫄깃쫄깃하고 특유의 향이 좋아, '빼어난 기장 처녀보다 더 빼어나다'는 평을 듣게 된 것이다.
미역 산지로 유명한 기장군 내에서도 고리원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일광면이 특히 유명한데, 126가구가 사는 이동마을 한 곳에만도 46가구가 미역농가일 정도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밭?삼아 이 해조류를 바라보며 사는 지 알 수 있다.
" 미역이 풍년 들고 미역 가격도 좋으면 우리끼리는 '팔자 고쳤다'고 말합니다. 올해는 미역이 풍년이니, 여기 저기서 '팔자 고쳤다' 고들 합니다." 말끝에 웃음이 벙글거리는 이정명 씨(44세). 기장 앞 바다에서 미역 양식을 하는 이이는 일광면 이천리가 고향이다. 젊어 외항선을 타던 7년여를 제외하곤 고향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데 미역 양식을 시작한 것은 88년도부터다. 미역 가격이 너무 헐던 한동안은 양식을 멈추었다가 '배운 도둑질이 그것'이어서 결국엔 배까지 한 척 장만하여 본격적으로 양식업을 하고 있다. 그이의 배 대영호를 얻어 타고 바다로 나간다. 목선과 같은 운치는 없지만, 가벼움과 신속함을 자랑하는 FRP(강화플라스틱)배답게 잔잔한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해가 이제 겨우 수평선에서 제 몸 하나 높이 만큼 떠올랐을까. 그런데도 기장 앞 바다는 해 뜨기를 기다려 달려나온 미역 채취선들로 수런하다. '만선호' '오공호' '영진호' '희망호'…. 대개 배 이름은 자녀들의 이름을 그대로 옮기거나 부모의 이름 끝 자를 조합해서, 혹은 '만선'과 같이 소망과 기원을 담아서 짓는다 하니, 바다 위에는 각각의 소망들이, 또는 부모나 자식과 같은 또 하나의 가족 구성원들이 떠 있는 셈이다. 6시 30분부터 나와 벌써 40kg짜리 자루 수십 개를 그득 채운 '오공호'의 선주 이정남 씨. 2만 미터 양식 면허를 가지고 있으니, 그 규모가 상당한 미역 농가의 주인이다. 배도 15년 정도 된 목선인 1.53톤 오공호를 작업용으로, FRP배를 순회기로 각각 소유하고 있다. 미역 농사만 30년. 70년대 중반, 기장에서 전국 최초로 미역 양식이 성공한 이래 서서히 전 지역으로 분포되었으니 그 미역 양식 초창기 때부터 농사에 뛰어든 셈이다. 그래서인지 '로라'라고 부르는 로울러 식 감속기에 줄을 감은 채 인부들과 함께 미역을 척척 낚아 올리는 솜씨가 밥상 위에 오른 나물 한 젓가락을 집어 올리듯 능숙하고 수월해 보인다

맛 좋은 북방형 미역 전국적으로 5%밖에 안 돼

" 우리 바다는 암반이 많아서 물이 깨끗해요. 그러니 깨끗하고 맛난 미역이 나지. 바닷물에서 건진 그대로 그냥 생으로도 먹는다니까." 하면서, 미역귀가 듬뿍 달린 줄기 하나를 대영호 갑판 위로 훌쩍 던져준다. 다른 곳의 미역보다 잎이 두터우면서 오돌토돌하고 윤기가 있다는 말 그대로의 생김이다. 입에 넣고 씹으니 쫀득쫀득 씹히면서 비린 듯 향긋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 어때요? 맛이 다르죠? 보통 미역들을 더운물에 살짝 데쳐서 먹잖아요. 그런데 저희 기장 일대에서는 그냥 생초를 날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요. 그래야 북방산 기장미역의 싱싱한 제 맛을 느낄 수 있지요."
덩달아 미역귀 한 개를 오물오물 씹으며 이정명 씨가 말을 거든다. 그이에 따르면, 미역에는 건조미역으로 이용되는 북방형과 염장 가공용으로 적합한 남방형이 있는데, 기장에는 북방형과 남방형 모두 난다고 한다. 그렇지만 기장의 특산품인 기장미역은 북방형을 말하며, 잎이 좁고 두터우면서 생초가 암갈색으로, 전국적으로 보았을 때 그 생산량이 약 5%밖에 안 되는 귀한 미역이라고. 이에 비해 잎이 넓고 엷으며 생초의 색채가 청색과 검정의 중간색이 도는 남방산 미역은 전남 완도를 중심으로 남해 연근해 바다에서 생산되는데 우리나라 전체 미역 생산량의 95%를 차지한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시중에서 자주 접하는 미역들은 대개 남방산이기 십상. 소고기를 넣지 않고 끓여도 소고기를 넣고 끓인 만큼 구수한 맛과 영양을 낸다는 칭찬과 함께 기장미역이 유명한 데는 그 희소성도 한 몫을 하는 것이다. 기장미역이 일본으로 수출될 때 타 지역 미역에 비해 ㎏당 1달러 가량 높은 가격으로 수출계약을 맺는 것도 그런 연유다.
높이 쌓아올린 미역 자루들의 무게 때문에 선체의 반은 물 속에 잠긴 채 배들이 해를 등지고 해안으로 향한다. 겨울철이니 뭍농사를 짓는 농가들이라면 지금쯤에야 사람들이 기지개를 켜고 나올 무렵인데, 벌써 하루치 농사일을 다 마친 것이다. 이제 전국으로 기장미역을 실어 나르기 위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대형 트럭들에 옮겨 실어 보내기만 하면 그만이다.
" 이런 쪼맨한 배에 이름이 뭐 있나"
다들 돌아 나가는데 뒤늦게 나왔는지 미역 자루가 그득해야할 배 안이 아직 빈 채로 조업중인 배 한 척을 만났다. 작은 배 안에서 부부로 보이는 두 노인이 주거니 받거니 일하는 정경도 정겹거니와, 배조차 보기 드물게 작고 암팡진 '통통배'다. 반가운 마음에 배 이름을 핑계삼아 말을 건네었더니, 오래되었으면서도 앙증맞은 느낌을 풍기기는 배나 매한가지인 선주 임영규 씨가 배 크기만큼이나 소박한 답을 한다. 미역 농사량도 '쪼맨'하다고 말하는 이이는, 인부도 없이 그저 아내인 한임선 할머니와 함께 3천 미터를 양식한다.



올 기장미역 농사는 풍년!

" 내가 올해 일흔 둘이고, 할머이가 예순 여덟이야. 그래도 수십 년 해 온 일인데 손놓고 가만 앉아 있을 수 있나. 농촌에서는 더 늙은이들도 괭이 메고 호미 들고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나가잖아. 그짝이지 뭐, 여기 이 바다가 우리 밭이닝께. 그리고 농부들 가을걷이하듯이, 우리는 지금이 수확철인 거여."
물살과 같은 굴곡을 이루며 다 자란 몸을 쉼 없이 뒤채는 미역 줄기, 조류의 상하운동에 덩달아 둥싯둥싯 춤을 추는 배들과 점점이 뜬 양식부자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율동과 활기는 11월 말경에 포자를 뿌려 둔 염장미역의 수확기인 2월 말과 3월 중순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농한기인 뭍과 달리, 기장 앞 바다는 지금수확이 한창이요, 그것도 '팔자 고친다'는 풍년, 풍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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