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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자와 중성자의 복합체로 이루어진 원자핵에서 과학자들은 마침내 핵에너지를 끄집어내는데 성공하였다. 페르미나 지랄드 같은 과학자들의 공에 힘입어 인류는 원자핵 에너지라는 인공적인 새로운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20세기 물리학을 뒷받침하는 두 기둥인 ‘양자론’과 ‘상대성론’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양자론은 많은 과학자들의 참여와 공동연구로 이루어진 반면 상대성론은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이 혼자 이루어낸 업적이었다. 20세기가 동이 트는 무렵 아인슈타인은 막 대학과정을 마친 물리학 지망생이었다. 함께 졸업한 물리학과 학생이라야 고작 네 명이었는데 다른 세 명은 곧바로 조교로 임명되었지만 멍청하다고 보여진 아인슈타인은 직장을 얻지 못했다. 그 후 2년 동안 직장이 없어서 가정교사 및 대리교사로 전전하다가 드디어 1902년에 오스트리아의 특허국에 3급 기술직으로 채용된다.

안정된 직장을 얻은 아인슈타인은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인 물리학을 연구할 수 있었고, 1905년에는 특수 상대성 원리라는 어려운 물리이론을 발표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을 통하여 우리가 느끼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아인슈타인의 시공은 뉴턴이나 우리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절대시간과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다른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고 시간과 공간은 서로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가 뒤엉켜서 분리할 수 없는 시공이지 시간이 있고 공간이 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시공은 4차원의 세계이고 우리의 상식을 넘는 그런 시공이다.

아인슈타인의 4차원 세계에서는 빨리 움직이는 물체는 길이가 짧아지고 시간은 더 천천히 흐른다는 상식을 넘어선 일들이 일어난다. 아인슈타인의 4차원 시공에서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로켓이 있다면 시간은 완전히 멈추고 공간은 그 움직이는 방향으로는 그 길이가 0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들 주변에서는 아무도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없다. 달리는 기차의 길이가 서 있을 때보다 짧아지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비행기 위에서는 시계가 더 천천히 움직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그런 세상은 본 적도 없고 상상도 되지 않기에 아인슈타인의 4차원 세계는 정녕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세계는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4차원 세계이다.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사실이고 그렇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설득하고자 한다. 믿어줄지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느낌만 가져주면 큰 성공이라 생각하겠다.

사실상 우리들이 인식하는 시간과 공간은 말 그대로 시간은 따로 공간은 또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막막하고 끝이 없는 우주라는 공간 속에 별들이 있고, 그 중의 하나인 태양이란 별을 맴돌고 있는 지구가 있다는 절대적인 공간개념이 우리들의 피부에 와 닿는다. 지구상이든 먼 별나라이든 1초의 길이는 똑같고 시간은 이 우주의 어느 곳에서든 꼭 같이 흘러가고 있다는 절대적인 시간을 생각한다. 물론 편리상 약속한 뉴욕과 서울의 기간은 다르다. 서울의 낮 12시가 뉴욕의 밤 11시이지만 이것은 단지 약속이지 서울의 24시간이 뉴욕의 24시간과 다를바 없다.

다시 말해서 서울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시계를 뉴욕시간에 맞추지 않고 그대로 두면 서울에 돌아왔을 때 서울 사람들의 시간과 꼭 같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자명하고 누구나 아는 사실을 구태여 설명할까? 지나간 많은 세월은 우리들의 상식이 틀려서 새로운 과학을 가져온 예가 너무나 많다.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명백한 일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말 어느 누구에게나 ‘같은 시간’ 대신 ‘같은 장소’라는 것이 똑같이 적용되는지부터 알아보자.

가령 어떤 사람이 달리는 기차의 식당차에서 커피를 마시고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놓고 약 십 분간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자. 그들에게는 분명히 그 커피잔이 같은 장소에 있었다. 그렇지만 기차 밖의 동네 사람에게 그 커피잔은 십분 뒤에 기차와 그리고 열차 식당의 식탁과 함께 적어도 십리 밖 다른 장소에 있다. 기차 위의 사람에게는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장소에 있는 커피잔이 동네 사람에게는 십리나 떨어진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과연 모든 사람에게 어떤 사건이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는 말이 꼭 옳은 것인가?

이야기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가 시작되는 1890년부터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만 해도 빛은 파동이어야 한다고 믿는 시대였다. 그런데 파동은 (그 당시만 해도) 꼭 매질이 있어야 전파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음파는 공기가 매질이고, 물의 파동은 물이 매질이며, 빛은 전자파로서 에테르(ether)라는 매질의 파동이라고 믿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 에테르라는 매질이 우주 전체에 깔려 있으며 지구와 태양 그 모든 것이 이 에테르의 호수 속을 지나가는 배처럼 에테르를 헤치면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다 보니 자연히 그런 생각에 젖게 되고 에테르는 꼭 있어야 된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에테르를 통한 지구의 운동을 알아봄으로써 에테르의 존재를 알려던 모든 실험에서 에테르가 있다는 아무런 증거도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자들은 계속 에테르를 찾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마치 서양의 우화 ‘임금님 새 옷’을 연상케 한다.

우화처럼 아인슈타인은 그릇된 고정관념을 깨고 에테르란 원래 없는 것이며 빛은 진공을 통하여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그의 유명한 상대성이론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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