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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드는 자연계의 우라늄의 대부분이 우라늄-238이고 0.7%만이 핵분열을 일으키는 우라늄-235이지만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페르미와 함께 우선 핵분열에서 나오는 중성자를 느리게 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보통 동위원소에서 나오는 방사선형식의 중성자 방출은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핵분열을 일으키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핵분열을 일으키는데 소용이 없다. 중성자의 속도가 빛 속도의 13분의 1 정도인 빠른 속도에서 1만분의 1 정도로 감속시켜야 한다.

핵분열이 일어나는 과정을 되풀이해서 설명해 보겠다. 보통 원소들은 중성자와 양성자가 동수로 들어 있다. 그러나 원소번호가 올라갈수록 중성자의 비율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산소는 양성자 8개, 중성자 8개로 이루어져 있고, 실리콘은 양성자 14개, 중성자 14개로서 역시 양성자와 중성자의 숫자가 같다. 그러나 원소번호가 올라가서 은이 되면 양성자가 47개인데 중성자는 60개나 된다. 우라늄-238은 양성자가 92개인 반면 중성자는 무려 146개나 된다. 이렇게 되면 원자핵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한다. 이는 마치 약한 쇼핑백에 너무 많은 상품을 담아서 곧 터지려는 현상과 같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많은 중성자가 있는데, 또 다른 중성자와 부딪치면 핵은 진동한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빠른 중성자가 우라늄핵에 부딪치면 그냥 쇼핑백을 스치고 지나가는 효과뿐이어서 우라늄 원자핵이 심한 진동을 하지만 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느린 중성자는 우라늄이란 쇼핑백 속에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핵이 중성자를 먹고 배탈이 난 것처럼 어쩔 줄 모르다가 몇 개의 중성자를 설사하는 사람처럼 배출하고 자기 자신도 둘로 갈라진다. 다시 말해서 빠른 중성자를 느리게 만드는 것은 핵분열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조건인 것이다.

핵분열을 좀 더 효과적으로 일으키려면 물론 우라늄-235의 비율을 높이면 좋지만 그 당시의 기술로는 우라늄-238과 우라늄-235를 분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므로 포기한 상태였다. 이론상 감속재로는 수소가 많이 들어있는 물질이 좋다. 왜냐하면 수소는 양성자 하나를 원자핵으로 한 원소이다. 그런데 어떤 물체를 감속시키려면 자기 자신과 무게가 같은 물체에 부딪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 이유는 당구를 쳐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무게가 같은 빨간 공에 같은 무게의 흰 공이 정면으로 충돌하면 흰 공은 그 자리에서 서고 빨간 공이 튕겨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값이 싸고 수소가 풍부한 물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구상에 가장 많은 물이다. 따라서 그들은 감속재로 물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지금은 많은 원자로에서 물을 냉각수로도 쓰고 역시 중성자를 감속시키는 재료로서 동시에 쓰고 있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미흡한 그 당시로서는 물로 감속시키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페르미와 지랄드는 감속장치의 원료로서 흑연을 택하였다. 그들은 원자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50톤의 흑연과 5톤의 우라늄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당시의 가격으로는 약 3만 5천 달러라는 거금이었다. 그 많은 돈을 구할 길이 없는 두 물리학자들은 정부에 건의해보기로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오토 한이 독일에 남아서 핵분열을 이용하여 원자탄 연구를 하고 있을 가능성 때문에 그들은 더더욱 핵분열의 연쇄반응 유도가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지랄드는 동료 물리학자이자 같은 헝가리 태생인 유진 와그너 박사와 의논하여 아인슈타인 박사를 동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아인슈타인 박사로 하여금 그 당시 대통령인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나치 독일이 원자폭탄 연구를 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하여 경고하기로 하였다.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편지는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난 뒤 5주만에 대통령에게 전달되었지만 결과는 지랄드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원자탄의 가공할만한 위력에 감을 잡지 못한 미국정부는 겨우 6천 달러의 연구비를 전달해 오는데 그쳤다.

그러나 몇 개월 뒤에 영국의 정보기관을 통하여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펄스와 오토 프리쉬가 희귀 동위원소인 우라늄-235의 대량생산, 그리고 폭탄제조의 방법과 그 가공할만한 위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보고서를 접하고 미국 정부의 태도가 돌변했다. 지랄드와 페르미의 연구 프로젝트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식한 정부는 풍부한 연구비를 지급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연구도 급진전을 보게 되었다.

길이, 폭, 높이가 2.5미터나 되는 30톤의 흑연에 8톤의 우라늄을 넣은 ‘파일’을 만들어서 베리륨과 라듐을 1차 중성자 원천장치로 만들었다. 연쇄반응의 중요성을 깨달은 정부는 그 당시 미국 물리학계의 대부이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콤프턴을 위원장으로 한 국가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원자로 프로젝트를 콤프턴의 고향인 시카고 대학으로 옮긴지 두 달 뒤 일본은 진주만 공격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CP-1이라고 이름 붙인 세계 최초의 원자로는 시카고 대학 운동장의 서쪽 편에 있는 스쿼시 코트에 설치키로 하였다. 연쇄반응이 성공하려면 400톤의 흑연을 벽돌 모양으로 쌓아 올리고 그 사이에 2만 2천 개의 막대기 모양의 우라늄 봉을 끼워놓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흑연의 검은 가루가 온몸을 덮고 땀을 흘리고 나면 땀구멍까지도 흑연가루로 막혀서 목욕을 하고 난 뒤에도 곧잘 흑연가루가 몸에서 배어 나오기도 했다.

거의 1년이 지나 1941년 12월이 되어 CP-1은 완성되었다. 페르미 교수의 지시에 따라 시운전에 들어갔고 중성자 계측기에 모두의 신경이 쏠리고 있었다. 연쇄반응이 너무 급격히 일어나면 막대형의 제어장치를 넣어 그 반응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였다.

시운전이 시작된지 얼마 안되어 중성자 계측기가 많은 중성자가 나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페르미는 이 중성자 계측기가 헤아리는 중성자수가 시간에 따라 지수함수(급격히 증가하는 기하급수의 일종으로 수학에서 많이 쓰이는 함수)처럼 불어나는 것을 확인한 후 제어봉을 써서 인류 최초의 원자로의 운전을 제어했다. 잔잔한 감동이 스쿼시 코트를 꽉 채웠다. 이렇게 인류 역사상 최초의 연쇄반응이 실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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